정우성 "한지민 잘 자라 따뜻한 품성 가져서…"

조회 6761 | 2011-12-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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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한지민 잘 자라 따뜻한 품성 가져서…"

[중앙일보] 입력 2011.12.12 00:21 / 수정 2011.12.12 11:08

통영에서 만난 JTBC 드라마 ‘빠담빠담’ 강칠 역 정우성
정우성이 망가졌다고? 양강칠 캐릭터에 맞춰가야죠

경남 통영에서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을 촬영중인 배우 정우성. 시청자·네티즌 사이에서 ‘명품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이 작품에서 양강칠 역을 맡은 그는 “강칠과 나는 사람에게 속고 또 속아도 또 사람을 믿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송봉근 기자]

카페 창 밖으로 잔잔한 바다가 보였다. 햇빛이 눈이 부시는 그곳에 배우 정우성(38)이 나타났다.

 “ 아담하니 좋죠? 통영은 지금도 예쁘지만 가을은 더 예뻐요. 마음이 평온해지죠.”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에서 순수한 영혼의 양강칠 역을 맡은 정우성. 그를 10일 오전 경남 통영 동피랑마을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점퍼에 면바지차림,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 양강칠 모습 그대로였다. 드라마 속 강칠은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16년간 교도소에 갇혀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남자다. 구부정한 자세에 촌스러운 남방을 걸치고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그러나 계산할 줄 모르고 남을 속일 줄도 모르는 남자.

 -정우성은 ‘멋진 역할’만 할 줄 알았다.

 “대본을 읽자 마자 이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제대로 된 걸 하나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만났다.”

 ‘빠담빠담’은 노희경 작가가 3년 만에 내놓는 드라마다. 삶의 심층을 건드리는 줄거리, 정우성과 한지민(지나 역)의 명품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다. 정우성과 노희경 작가의 호흡은 처음이다. 노 작가에 대한 그의 평소 생각을 물었다. 답이 길었다.

서로 사랑을 키워가는 차가운 성격의 지나(한지민)와 순수한 강칠(정우성).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치매 걸린 엄마가 가슴이 아프다고 빨간 약을 바르는 장면이 있었다. 온 세상의 한파를 다 겪은 후 아이 같은 마음이 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감성이지 않나. 온 세상의 때가 다 묻었지만 아이 같은 순수함을 지킨다는 건, 자아를 엄청나게 돌본다는 거다. 절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작가더라. 우리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감정, 간직하고 상처받고 위로 받는 감정을 그려내는 분이었다. ‘저 작가의 드라마에 녹아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노 작가를 한 번 뵙고 싶었지만, 자리를 만들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그냥 지나갈 줄 알았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숙명인지 ‘빠담빠담’ 대본이 왔다.”

 -강칠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캐릭터라 연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강칠은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 교도소에서 16년 동안 감금되어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고, 복잡했겠나. 아주 많은 더러운 ‘때’들이 묻을 수 있었겠지만, 미스 노(※정우성은 노희경 작가를 이렇게 불렀다)께서 대본에 써놓은 강칠이는 순수성을 지켜낸 아이다. 그래서 연기하면서 되게 많이 생각하게 된다. 투박하고 거칠고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지만,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깨끗하고, 꾸밈이 없다. 이해타산에 따른 말 돌림도 없고.”

 -등장하지 않는 신(장면)이 거의 없다.

 “드라마 초반 강칠의 좌충우돌이 많이 담겼지만, 이 드라마는 인간군상의 이야기다. 시청자는 강칠의 감정을 쫓아가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엄마의 이야기이고 지나의 이야기다. 그래서 ‘원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요즘 드라마는 거의 뻔한 소재, 뻔한 내용이다. 외형적·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면서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하지만 강칠은 자기보다 더 나은 환경의 여자를 만나면서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왜 그런 사랑은 주목 받지 못할까. 이 드라마는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사랑이 우리가 더 해야 하는 사랑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똥개’에서 맡았던 역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둘 다 잘생기고 멋진 역이 아니다.

 “‘똥개’의 차철민도 강칠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무릎 나오고 늘어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아버지하고 치대는 역. 그런데 당시 대중은 정우성한테 그런 캐릭터를 기대하지 않았다. 대화도 상대(대중)가 준비됐을 때 해야 하는 거라는 걸 그때 느꼈다. 나도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임에도 팬이나 관객이 내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혼자 방황했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좀 느슨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강칠을 통해 ‘미모’가 망가지는 느낌이다. 교수대에서 콧물을 흘리는 장면이라든지.

 “만약 다른 캐릭터였다면 다시 찍자고 했을 거다. 하지만 강칠이라는 인물이니까, 그냥 갔다. 옷도 그렇다.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옷, 촌스러움이 있는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얻어 입었을 것 같은 양복, 바짓단도 짧고. 가끔 다른 연기자들을 보면 꾸며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과하게 꾸밀 때가 있다. 하지만 캐릭터에 맞게 해야 한다. 극 속 인물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빗질을 안 하는 것도 강칠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다. 강칠은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화물트럭에 앉아 쉬고, 옷에 뭐가 묻어도 되고 편하다.”

 -한지민과의 호흡은.

 “잘 맞는다. 한지민씨는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라 따뜻한 품성을 가졌다. 말도 차분히 하고, 어르신들 대하는 게 능숙하다. 통영에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농담을 너무 잘 받아치더라.”

 -‘빠담빠담’은 사랑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정우성이 생각하는 기적은.

 “매 순간이 기적이다. 늘 새로운 하루이지 않나. 나는 종교는 없지만 ‘늘 감사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산다. 삶과 죽음, 지옥과 천국은 자기 생각 하나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강칠이가 김교위님을 때리지 않았을 때 새 삶이 시작됐다. 국수가 그러지 않나. ‘형의 삶에 대한 의지가 형을 살린 것’이라고. 삶은 여러 행로로 나 있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곳으로 삶이 흘러가는 것 같다.”

통영=김효은 기자


‘빠담빠담’ 명대사

▶ “국수야, 이상해. 내가 왜 이래. 내가 죽었는데 자꾸 자꾸 살아나. 너 몰라? 내가 교수대에서 죽은 거 너 진짜 몰라? 내가 죽었다고. 내가 죽었는데 자꾸 자꾸 살아난다고 인마. 내가 시간도 장소도 엉망진창으로 왔다갔다 한다구. 나 또 여기서 사라져서 어디 딴 데로 갈지도 몰라.”

-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강칠(정우성)이 국수(김범)에게.

▶ “첫번째 기적에서 배운 걸 잊지마. 형의 의지가 형을 살린 거야. 인간답게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형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김교위님을 치려던 주먹을 멈추게 한 거라고.”

- 교도소를 나오며 국수가 강칠에게.

▶ “시각장애인 안내견 수업 중이에요. 사회화 수업이요. 안내견 되기 전에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교육이요.”(지나)

▶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요? 그건 나한테 필요한 건데….”(강칠)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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