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호황기에 부동산 신탁사들은 경쟁적으로 책임준공확약 관리형 개발신탁(책준형 신탁) 사업을 확장했다. 보증을 해주는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은 단기 실적에 눈이 멀어 외형 확장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지주사들은 그 뒤처리를 하느라 속앓이하고 있다.
23일 신탁업계에 따르면 14개 신탁사의 책준형 PF 총잔액 24조8000억원(작년 말 기준) 중 4대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의 잔액은 14조8600억원으로 60%가량을 차지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일반적인 차입형 신탁 사업은 기성 신탁사들의 점유율이 높았기에 후발주자인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은 책준형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다”며 “시장에서도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여차하면 금융지주가 유동성을 지원해줄 것으로 보고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에 일감을 몰아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책준형 신탁은 일반 관리형 신탁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고수익 사업이다. 신한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하나자산신탁 우리자산신탁 등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은 모회사의 높은 신용도를 앞세워 기존 신탁사들을 제치고 책준형 신탁 시장에서 빠르게 발을 넓혔다. 실적은 급성장했다.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 네 곳의 영업수익 총합은 2018년 3410억원에서 2022년 6060억원으로 70%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대한자산신탁 등 비금융 계열 대형 신탁사 네 곳의 총영업수익이 6910억원에서 6180억원으로 뒷걸음친 것과는 대조된다.
신한자산신탁이 책준형 신탁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전체 133건을 보증하고 있다. 이들 사업의 PF 대출금액은 총 5조5676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 자기자본(3779억원)의 14.7배다. 자본총계가 2860억원가량인 KB부동산신탁도 책준형 신탁 사업 72건(대출 규모 4조원대)을 보증하고 있다. 자기자본이 2582억원 수준인 우리자산신탁은 PF 대출액 기준 2조2760억원 규모의 책준형 신탁 사업을 하고 있다. 자기자본의 8.8배 수준이다. 하나자산신탁의 책준형 신탁 사업 PF 대출금액도 3조126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 자기자본(5421억원)보다 5.6배 많다.
이미 금융지주에 손을 벌린 곳도 있다. 지난달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자산신탁이 발행한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자금 수혈을 해줬다. 지난 3월 신한자산신탁에 1000억원을 빌려준 데 이은 조치다.